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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유서가

    교유서가 시집 접시 위에는 잘 차려진 비밀이(교유서가 시집 006)

    지은이 추성은
    출간일 2026년 4월 6일
    사양 125*210mm (무선)|132쪽
    ISBN 13,000원
    수상
    정가 13,000원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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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책소개

    내가 모르는 사이

    문밖에서는 빙하기가 진행되고 있을 것 같다

     

    매끄러운 일상을 타격하며 드러나는

    오래전부터 건너온 비밀들

     

    2024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자 추성은 첫 시집

     

     

    2024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추성은 시인의 첫 시집 접시 위에는 잘 차려진 비밀이가 교유서가 시집 6번으로 출간되었다.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의 형상을 통해 현대사회의 매끄러운 가시성 뒤에 숨겨진 의 실체를 드러낸 등단작 을 비롯하여, 일상적 소재에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한 시 45편이 묶였다. 투명한 벽에 갇힌 비밀들을 시인의 언어라는 으로 통과시켜 독자의 눈앞에 꺼내 보이는 시편들에서 주변의 존재들을 바라보는 추성은 시인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공룡의 심장은 인간의 심장을 닮았다

    매끄러운 투명함이라는 함정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비밀스러운 고동소리

    해설을 맡은 노지영 문학평론가는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는 매끄러운 투명함은 가시성의 벽을 만든다고 말했다.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 듯한 유리창은 안에 있는 인간에게는 개방감을 주지만, 밖에서 날아오는 새들에게는 치명적인 투신의 장소가 된다. “곧 창문에 새가 부딪칠 것이다/ 깨질 것이다”()라는 예언적 시구처럼, 시인은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이 투명한 벽의 존재를 충돌을 통해 독자에게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빙하기, 얼음, 화석과 같은 차갑고 딱딱한 소재들은 오래전부터 건너온 비밀을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접시 위에서 낱낱이 발골된 뼛조각들은 누군가에게 대접하려는 듯 정갈하게 차려져 있고, 박물관에는 피와 살을 잃은 모형 공룡 화석의 갈빗대가 전시되어 있다. 시인은 뼛조각을 보며 날아다니던 새의 모습을, 공룡 화석을 보며 박동하던 공룡의 심장을 떠올린다. 사물이 되어버린 것들을 보며 그들이 온전한 육체였을 때 품었을 이야기들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추성은이 생각하는 시인의 일이다.

     

    나는 그날 저녁에 먹을 쌀을 안치며

    공룡을 먹어치운 홍학이 물에서 깃털을 씻으면

    그 물에서부터 솟구치는 커다란 심장을 떠올리게 되는데

     

    백악기부터 지금까지 뛰는 심장

    문을 여닫는 당신

    _육식 습관부분

     

     

    태초의 마음은 먼지였을까

    우리를 앞지른 과거가 관성처럼 되살아날 때

    추성은의 시에는 멈추지 않고 증식하는 형상이 많다. 나의 몸안 어딘가에 있다는/ 종양에서는 머리카락과 치아가 자라 있었다”(몸의 재료) 고백처럼, 시인이 응시하는 생명은 아름답기보다 기묘하고 서늘하다. 죽음과 소멸의 징후여야 할 것들이 오히려 부지런하게 팔과 다리가 돋아”(물과 소금)는 활력을 보일 때, 규격화된 세계의 논리는 힘을 잃는다. 시적 화자가 머무는 욕조 역시 정화의 공간이 아니다. 욕조의 수챗구멍을 들여다”(서울)며 그 안에서 엉겨붙은 머리카락을 응시하는 행위는 일상에서 기어이 자라나는 것들을 목격하는 일이다. 인간인 줄 알고 자라나는 것들, 죽었으나 여전히 맥동하는 것들. 시인이 기록하는 언어는 매끄러운 유리벽에 갇힌 존재들이 야생성을 회복하기 위해 내지르는 조용한 비명이다.

     

    추성은의 언어는 사물이 되어버린 것들의 무수한 비밀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삶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달아오른다. 시인은 세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비밀이 멀리 있지 않다고 믿는다. 아주 희박한 관성이 나를 움직인다고 느낀다”(2024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 소감)는 시인의 말처럼,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는 아주 미세한 관성이 이 시집을 이루는 힘이다. 이제 투명한 벽에 갇혔던 언어들은 날개를 꺾는 투신이 아니라, 규정된 방향을 지우고 날아오르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

     

    날개 대신 두 다리로 선 새들이

     

    이윽고 나의 마음과 함께

    방위 없이 날아가기

    _유형부분

     

     

     

    책 속에서

    연인과 토막난 조류와 그를 구성하는 모든 풍경은

    마치 설탕공예처럼 얇고 아름답지.

    _투명한 늑골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이분 삼십초 동안

     

    그는

     

    사물과

    인간에게는

    시간이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과

     

    자신이 인간보다는 사물에 가깝고

    부모가 아닌 누군가 자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러든 말든, 시는 전자레인지 속에서

    이분 삼십초간

    부지런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_상한 음식

     

    아쉬운 듯 이야기하는 너에게 어젯밤 만진 빛의 감촉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전신주들은 바깥의 슬픔을 안고 방 곳곳에 스며들었다 소라를 귀에 대고 이별을 기다리다보면 바다가 밀려오듯 커튼을 친 실내는 푸르고 어두웠다

     

    ()

     

    빛들은 손등에 누워 잠에 들었다 나는 긴 낮으로 말린 옷을 입고 빈 침대를 정리했다 현관으로 스며드는 느슨한 공기와 먼 건물로 원정을 떠난 너를 잠시 떠올리다가, 먼 곳에서 타오르는 바다를 지켜보았다

    _조수

     

    아이는 옆에서 시체처럼 잠들어 있다

    저 작은 발가락을 간지럽힌다면, 내가 단숨에 저 아이를 주먹으로 쥐었다 펴서

    구긴다면

     

    그렇게 압축된 작은 원에서 아주 작은 심장소리가 들린다면

    그게 꼭 아나운서의 목소리처럼 들린다면

     

    간직하게 될까?

     

    저 목소리와

    고동

    사랑을

    _고스트 하우스

     

    욕조를 들여다본다. 새하얗고 빈 욕조. 두 명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넉넉한 욕조. 그래도 우린 늘 혼자 씻었다. 수챗구멍을 들여다본다. 연인의 머리는 푸른색이다. 물 빠진 푸른색. 푸른색은 염연하다. 누가 화장실 치울래? 물어보면 수챗구멍을 들여다본다. 구멍 속에는 연인의 머리카락과 내 머리카락이 엉켜 있다.

     

    그는 내 어깨를 끌어안고 영원에 대해 말한다. 화성 어디에 있다는 공룡의 뼈에 대해서. 수꽃이 핀 버드나무에 대해서. 그치만 나는 영원을 잘 몰라. 우리가 함께 늙어갔으면 좋겠고, 함께 종로에서 명동까지 걸어갔으면 좋겠고, 너는 앞으로도 오래 살 사람끼리 그런 말 하는 건 어떤 의미도 없다고 했다. 나는 머리카락이 생각난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욕조. 발등에 눈이 막 쌓였고 우리는 함께 걸었는데 돌아보니 도통 내 발자국 같지가 않았다.

    _서울

    작가소개
    저자: 추성은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산문집 『이전과 다르지 않다, 아마 미래도』가 있다.

    *시인의 말
    그렇게 나는 나를 통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