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월드
지은이 | 오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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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5년 10월 13일 |
사양 | 130*200mm (무선)|240쪽 |
ISBN | 979-11-94523-90-1 |
수상 | |
정가 | 16,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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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스페이스 월드는 없었다.
정말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밤하늘의 폭죽처럼 쏘아올린 여덟 편의 이야기
장소에 스민 기억과 마음들을 끌어안는 작가
오선영 세번째 소설집 출간
“오선영은 멀리 보는 눈과 깊이 듣는 귀와 다정함이 깃든 손으로 세상을 감각한다.”
_김미월(소설가)
“장소에 깃든 인간의 정서를 섬세하게 읽어낼 줄 아는 작가”
_손홍규(소설가)
2022년 제22회 부산작가상을 수상한 오선영이 세번째 소설집 『스페이스 월드』로 돌아왔다. 전작 『호텔 해운대』(창비, 2021)가 주로 부산이라는 대도시를 무대로 삼았다면, 이번 소설집은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장소에 주목한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공간과 장소』(사이, 2020)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입니다. 처음에는 별 특징이 없던 공간은 우리가 그곳을 더 잘 알게 되고 그곳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장소가 됩니다.” 오선영의 소설은 바로 이 말에 응답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인물의 삶과 기억으로 채워 생생한 장소로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집요하고 다정한 시선은 이 소설집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판매중인 게시글이 없어요.”
균열하는 도시의 틈새에서 감지되는 것
「어니언마켓」은 소도시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가상의 중고거래 앱 ‘어니언마켓’을 통해 풀어낸다. 중고거래 목록은 이용자의 생활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더불어 신축과 구축의 격차, 서울과 지방의 교육 환경 차이 등을 내포한다. 「카페인 랩소디」는 부산 출신 청년 민우가 서울에 취직하며 겪는 사건을 그렸다. 지방 출신이라는 낙인, 생활비와 사랑을 저울질하는 민우의 내적 갈등에서 오늘날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단함이 드러난다. 「발령의 조건」은 부산으로 발령이 난 부부가 부산행 열차 안에서 미래를 그리는 이야기이다. 부산은 서울보다 집값이 쌀 것이라는 기대는 곧 좌절로 이어지고, 도시 간 격차와 지역의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63빌딩과 한강으로 표현되는 서울과 낮은 지붕 집과 비릿한 냄새로 표현되는 부산이 대조되며 두 사람의 앞날을 은은하게 암시한다.
“물탱크들은 유리구슬처럼 반짝였다. 바람이 불자, 수십 개의 유리구슬이 부딪치며 찰랑찰랑 물소리를 만들어냈다. 물소리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코끝을 자극하는 그 소리가, 두 사람의 부산행을 예고하는 은밀한 전주곡처럼 들렸다.” _「발령의 조건」에서
“할머니, 밤마다 집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집이 숨 쉬는 소리. 선주가 와서 집이 살아났네.”
사라지는 장소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
「안평」과 「스페이스 월드」는 연작처럼 읽힌다. 「안평」은 보증금 사기를 당한 선주가 친구 아버지가 투자 목적으로 사둔 구옥에 머무르며 겪는 일을 통해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을 보여준다. 원주민과 외지인의 대립에서 ‘집’은 거주 공간을 넘어 권력과 투기의 대상이 된다. 「스페이스 월드」는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장소에 대한 기억을 탐색한다. 안평에서 함께 자란 은경과 주현은 학창 시절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일본의 우주 테마파크 ‘스페이스 월드’에 방문하지만, 그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 재개발을 앞둔 안평과 사라진 장소 스페이스 월드가 중첩되며 소멸하는 장소들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찬란했던 어느 한 시대가 완전히 허물어진 광경을, 광활한 우주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으로 전락해버린 실제를 보고 싶었다. 괜한 미련 갖지 말라고, 냉혹한 현실은 나의 작은 기대나 헛된 희망으로 바꿀 수 없다고, 이제 와서 내가 아쉬워한들 안평을 되돌릴 순 없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고 싶었다.” _「스페이스 월드」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무너지는 관계 속에서 다시 묻는 의미
「아직 오지 않은 말」은 군인 아버지를 둔 진희의 회고담이다. 진희가 한때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버지가 친구 어머니와의 성추문으로 부끄러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지만,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부녀 관계는 부끄러움과 자부심, 원망과 이해가 뒤엉킨 복합적 서사로 전환된다. 「유치보관함」은 선천적으로 영구치 하나가 없는 미주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친구들과 혈액형 이야기를 하다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어머니가 친모가 아니라는 사실―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가정을 버리고 떠난 친아버지 대신 곁에 남아 미주를 돌본 건 양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혈연보다 더 강한 돌봄의 의미를 새기며 가족의 정의를 재고하도록 만든다. 「임시보호자」는 가족제도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돌봄을 탐구한다.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친해진 서영의 사망 소식을 들은 하진은 홀로 남은 아이, 현우를 보호하려 한다. 법적으로 연결된 가족은 서영을 외면하고, 경찰과 공무원은 서영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만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 현우를 돌보는 하진은 혈연과 제도를 넘어선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선영이 그려낸 이야기들은 안평의 집들처럼 생생하게 숨 쉰다. 『스페이스 월드』는 “우리가 어디에서 살아왔는가”, “우리가 어디에 머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고향과 타향, 머물고 싶은 곳과 떠나고 싶은 곳, 사라진 장소와 되살아나는 장소 사이에서 인물들은 갈등하고 선택하며 또다른 이야기를 빚어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장소에 스민 인간의 정서를 섬세히 포착하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묻는다.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어떻게 기억을 품은 장소가 되고, 마침내 삶 자체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준다.
잠들어 있던 집들이 일제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빨간색 슬레이트 단층집이, 파란 대문 집이, 골목 입구의 무허가 집이, 정자 옆의 폐가들이 단체로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푸흡, 푸흡. 벽들이 부풀어오르고, 마당의 잡풀들이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로 변했다. 밤하늘의 별들이 폭죽처럼 터졌다. 사방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고요하던 마을에 피가 돌고, 물이 차오르는, 안평安平이었다. _「안평」에서
추천의 글
나는 소설가 오선영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오래전 오선영 때문에 부산에 간 적이 있다. 그의 등단작을 읽고 외지인의 시선과 정주민의 입장 사이를 능란하게 오가며 동물적인 균형 감각과 집중력으로 한 도시를 놀랍도록 생생히 묘파해낸 작가가 궁금해서, 그 작가가 사는 도시 부산이 궁금해서였다. 그로부터 십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새 소설집을 읽고 나의 다음 여행지는 안평이 되었다. 『스페이스 월드』에서도 작가는 멀리 보는 눈과 깊이 듣는 귀와 다정함이 깃든 손으로 세상을 감각한다. 하여 지붕 위 물탱크에서 유리구슬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상처받은 이의 어깨에 꽃잎을 면사포처럼 덮어주고, 주름진 노인의 얼굴에서 보조개를 발견하며, 죽어 있던 집에 숨을 불어넣어 마침내 날개도 없이 우주로 날아오르게 한다. 그렇게 탄생한 오선영의 눈부신 스페이스 월드가 바로 여기 우리 앞에 놓여 있다. _김미월(소설가)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산다는 건 바로 이런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어쩌면 독자는 처음부터 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되새겨보아야 할 건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여기서”이다. 작가는 우리가 행하는 일의 정체보다 그 일이 어디에서 벌어지느냐에 더 중대한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오선영은 장소에 깃든 인간의 정서를 섬세하게 읽어낼 줄 아는 작가니까. 우리가 머물렀다 떠나는 숱한 장소들이야말로 삶 자체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 삶에 영원히 거주할 수 없는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사무치게 안평에 가고 싶었다.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옛집의 문고리를 그들처럼 당기고 싶었다. 오선영, 이 작가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가슴 시리다. _손홍규(소설가)
책 속에서
암흑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동그랗고 말간 눈이 두 개 있었다. 네 개, 열 개…… 스무 개…… 점점 불어났다. 그중에서 두 쌍의 눈이 어둠 속 고양이 눈동자처럼 커졌다. 비정상적으로 커지다가 점점 또렷해지는 눈을 가진 이는 헤르메스와 태태맘이었다. 커질 대로 커진 두 사람의 얼굴이 고무풍선처럼 떠올랐다. 천천히, 조금씩 재희에게 다가왔다. 얼굴들이 눈앞까지 다가오자 그녀가 손을 들어 힘껏, 찔렀다. 뭉툭한 손톱이 푹, 들어가자 팡, 소리를 내며 두 개의 얼굴이 찢어졌다. 흩어진 얼굴에서 희미한 빛이 났다. _「어니언마켓」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사랑을 확인하지 못해도, 그달 생활비는 왕복 기차 요금에 데이트 비용을 더한 만큼 여유가 생겼다. 민우는 생활비와 연인에 대한 사랑을 저울에 올려놓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토요일 밤, 홀로 배달 치킨과 만 원에 네 개 하는 편의점 캔맥주를 앞에 두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볼 때면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충만한 기쁨에 사로잡혔다. _「카페인 랩소디」
물탱크들은 유리구슬처럼 반짝였다. 바람이 불자, 수십 개의 유리구슬이 부딪치며 찰랑찰랑 물소리를 만들어냈다. 물소리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코끝을 자극하는 그 소리가, 두 사람의 부산행을 예고하는 은밀한 전주곡처럼 들렸다. 혜주는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_「발령의 조건」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숨을 푸우— 내쉬다가 흐흡— 하고 마시는 것 같았다. 서서히 볼륨을 높이는 것처럼 소리가 커졌다. 자개농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커튼이 없는 창문을 쳐다봤다. 도심에서 일어나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발생한 사건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아닐 거야, 그럴 리가를 되뇌면서 얇은 창문과 낡은 창틀을 봤다. 달빛 아래에서 나뭇잎들이 몸을 비볐다. 다시 들리는 소리.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벽.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았다. 꿈인가 싶어 두 눈을 세게 비볐다. _「안평」
나는 주현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스페이스 월드’ 사진이 나온 페이지를 찢어 재빨리 교복 호주머니에 넣었다. 밤마다 사진을 보며 아폴로 11호를 타고 안평에서 탈출하기를, 핼리혜성보다 빨리 날아서 은하수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무한한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지구도, 산 위의 안평도, 반짝이는 도시도 모두 하찮게 보일 것 같았다. 상상 속의 그 광경이 나를 숨쉬게 했다. _「스페이스 월드」
어떤 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순간에도 자꾸만 미끄러져서 다시 미래로 간다고, 수신인과 발신인을 구분할 수 없게 된 그 말을 외면서 나는 아버지의 진녹색 군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_「아직 오지 않은 말」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미주를 향해 다가오는 정체 모를 소리였다. 듣고 싶지 않은데 모든 신경이 소리의 행방을 찾는 데 집중했다. 흡, 미주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소리는 터져나오지 못하고 안으로 삼켜져버렸다. 눈앞에 할머니가 서 있었다. 만화책에서 본, 치과에서 떠올린 후 미주의 꿈에 종종 나타나던 합죽이 노파였다. 노파가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징그럽게 웃었다. 길고 마른 손가락을 들어 송곳니를 쑤욱 뽑았다. 잡초를 뽑는 것만큼 무심하게 앞니를 뽑았다. 어금니를 뽑았다. 마지막으로 왼쪽 아래 세번째 이까지 전부 뽑았다. 이가 없어지자 노파의 광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뺨이 깊게 패고 미간에 주름이 엉망으로 졌다. 노파가 손가락을 가위처럼 벌렸다 붙였다를 반복했다. 미주의 팔뚝 위로 물이끼처럼 소름이 돋았다. 당장이라도 노파가 제 입을 찢고 치아를 뽑아버릴 것 같았다. _「유치보관함」
불이 켜지지 않는 센서 등을 향해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왜 이러지? 이상하네, 라는 말을 내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중얼거렸다. 아이를 따라 나도 팔을 흔들었다. 어둠 속에서 나와 아이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_「임시보호자」
차례
어니언마켓
카페인 랩소디
발령의 조건
안평
스페이스 월드
아직 오지 않은 말
유치보관함
임시보호자
작가의 말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모두의 내력』 『호텔 해운대』, 산문집 『나의 다정하고 씩씩한 책장』 등이 있다. 제9회 평사리문학상 대상, 제10회 요산김정한창작지원금, 제22회 부산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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